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의미없는 일이지만 다른 짓도 의미없기는 매한가지다.
사람은 살아가며 매 순간마다 대상의 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다.
'나는 베토벤보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좋아.' 와 같은 개인에 국한된 것에서,
'살인은 나빠.', '약한 사람을 돕는 것은 좋아.' 와 같은 사회에 관련된 것들도 있고,
'모피 코트를 입는 것은 나빠.', '바다를 보존해야 해.' 와 같은 사회에서 벗어난 것들도 있다.
판단의 기준은 보통 특정 대상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이다.
놀랍게도 인간에게 있어서 이 대상은 자신의 몸에서 1 cm 떨어진 곳까지가 될 수도 있고,
주변 수십 명을 아우를 수도 있고, 수천만 명이 포함되는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수억 명을 아우르는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수십억 명이 포함된 지구가 될 수도 있다.
판단의 대상이 넓은 사람은 더 많은 대상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많은 대상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철저히 개인 본위의 살인자가 평생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수십 명이다.
국가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한 달 동안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수천 명이다.
하지만 살인자가 행복하게 한 사람은 한 명이다.
그리고 지도자가 행복하게 한 사람은 수천만 명이다.
단순히 크기의 셈으로 따지자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강한 힘으로 더 넓은 대상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또는 옳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어떤 삶인지 모른다.
우주 입장에서 지구의 존재 의미는 모기의 단련을 위해 문명화된 인간을 사용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우주인에게 모기 재배소의 인류의 정의 따위는 우주 인권에 포함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돌아오는 곳은, 개인과 그 지각 범위 안의 존재에 대한 행복이다.
결국 인류는 기껏해야 작은 별의 껍질에 사는 수억 종의 생물들 중 한 종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아니면 누가 인류의 행복을 위할 것인가?
# by gloine | 2009/02/03 17:43 | 글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