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지 12년이나 지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이라는 책을 읽었다.

우선 디지털 세상의 첨단에 서서 1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본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의 책이 나왔을 때 모뎀조차 드물던 한국에는 지금 그의 말대로 구리선을 이용한 정액제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고 음악과 영화 산업은 온라인으로 - 비록 한국에서는 해적판이 대다수이지만 - 이동했으며 인터넷에서는 소위 UCC라 불리는 탈중심화된 컨텐츠 공급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예측이 그렇듯, 빗나간 부분도 많다. PC를 사용하는 인터넷 방송이 HDTV를 압도할 것이라던 저자의 전망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HDTV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으며, 스스로 원하는 컨텐츠를 선택하기보다는 컨텐츠 공급자가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수십 개의 채널에 만족해하고 있다. E-mail 이 팩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 공적인 문서들은 거의 팩스로 처리된다. 왜냐고? 어쨌건 계약 성사와 내용 전달이 목적 아닌가. 전자 문서는 인트라넷에서 사용되는 것이 고작인데, 더 널리 쓰이지 못하는 이유는 문서 포맷과 보안 문제 때문이다.

컴퓨터-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한 저자의 예측은 참담할 정도로 빗나갔다. 아직까지는 음성과 기타 정보를 통합하여 인지하는 지능적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커녕 과도기적인 펜과 터치 입력 인터페이스도 엉망 진창이다. 서비스의 개인화에 대한 저자의 예측 역시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듯 싶다. 개개인에게 맞추어진 정보의 제공은 도무지 개개인의 성향을 컴퓨터가 조사하고 예측하지 못한다는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효용성이 없다. 심지어 영화 선호도의 개인화에 대한 솔루션의 성능을 10% 높이는 것에 백만 달러짜리 현상금 - Netflix Prize - 이 걸려 있기도 하다.

각종 미디어의 융합과 변환 역시 이루어지지 못했다. 모든 정보에 꼬리표가 붙으리라는 그의 생각도 아직 현실이 아닌데, 그 이유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 드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무슨 꼬리표를 붙일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꼬리표는 보통 수십 개가 붙어야 할 성 싶은데, 그 중의 수십 개는 안 붙여도 된다.

교육에 대한 저자의 통찰 - 인터넷을 이용한 획일화된 교육의 탈피 - 은 그것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학생들에게 동시에 최고의(?) 획일적인 강의를 선사하는 놀라운 수능 교육 사이트들의 출현이 이루어졌다. 아무래도 온라인 교육의 컨텐츠 다양화는 공익사업이 되어야 할 성 싶다.

그 밖에 저자가 예측하지 못한 중요한 변화라면 엄청나게 중요해진 정보 검색 기술일 것이다. 저자는 검색 기술의 필요성을 보지 못하고 같은 일을 위해 태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금 정보 검색 기술은 텍스트를 넘어서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검색해야 하는 상황인데, 답보 상태인 인공지능 기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아마도 이것을 해결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요약하면, 저자의 예측 실패는 멍청한 컴퓨터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뇌기능 하나하나를 따로 연구하는 방식으로는 요원할 것이다.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 - 인터넷에 의한 탈집중화 - 는 일면 이루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통신의 자유로움은 다양한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했지만 사람들은 정말로 다양해지기를 원하는가? 오히려 대중은 좀더 서로 비슷해지고 같은 메세지에 반응하게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수의 사람이 암묵적인 메세지로 세뇌된 대중을 조종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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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ine | 2007/02/19 00:37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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